기획 | '사라진 시간' 다시보기

2020-06-29 14:33

[맥스무비=이은지 기자] 정진영이 배우 생활 33년만에 연출가의 꿈을 이뤘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배우 정진영이 아닌, 감독 정진영으로 관객들과 처음으로 만난 작품이 됐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난해한 이야기와 결말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사라진 시간'이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처음 봤을 때 당황스러울만 한 결말이지만, 천천히 다시 보면 참으로 매력적이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조사하던 형사 형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일을 겪고, 자신의 진짜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배우 조진웅이 형사 형구 역을 맡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따른다. 시작부터 기묘하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외지인 부부가 들어온다. 남편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온화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한 그는 단아한 모습의 아내와 함께 산다. 미스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내가 밤만 되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미 고인이 된 남자의 엄마가 됐다가, 수십년 전 사망한 개그맨이 되기도 한다. 남자는 아내를 그 자체로 사랑하지만 주변인의 시선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에 화재사건이 발생한다. 기묘한 도깨비 불 같은 것이 집을 뒤덮고, 결국 부부는 사망한다. 그 안에는 남의 시선, 즉 마을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 속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기묘한 도깨비 불은 이 영화가 그저 흔한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두 사람이 죽은 참혹한 화재사건이지만, 어딘가 묘하게 아름답고 황홀한 느낌을 준다. 마치 현실이 아니라는 듯.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 의문의 화재사건을 조사하러 온 형사 역시 외지인이다. 마을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신들의 비밀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한다. 결국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이 모든 것을 책임기지로 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마을 어른의 생일, 형구는 의도지 않게 잔치에 초대되고, 또 의도치 않게 만취에 이르른다. 그 후 형구의 모든 것이 뒤바뀐다.

형구가 잠에서 깬 것은 학교 교감 선생님의 전화였다. 왜 출근을 하지 않냐는 다그침에 짜증이 나지만 일단 일어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라진 시간' 속 형구는 부정과 분노, 체념, 수긍의 과정을 겪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형사 형구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 다니고, 아내와 아들의 흔적을 찾지만 그 어디에도 없다. 교사 형구를 부정하고 형사 형구를 찾으며,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을 향해 분노한다. 그 사이 교사 형구는 정신과를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이 조사하던 화재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인지도 모를 상황을 수긍하고 체념한다. 마지막은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형사 형구가 아닌, 교사 형구의 길이다.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혹은 추리물로 생각하고 '사라진 시간'을 봤을 관객들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낄법한 결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의 괴리. 영화 속에서는 좀 더 극적으로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런 감정을 느끼고 살아간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간혹 "네가 그럴 줄 몰랐다"라던지 "내가 아는 넌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을 듣게된다. 이 간극을 과도하게 넓힌다면 '사라진 시간' 속 형구가 되는 셈이다. 이 영화의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이유,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닌, 정진영 감독이 말한 "굳이 장르를 말하면 슬픈 코미디" 정도로 보는게 맞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라진 시간'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상업영화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슬픈 코미디 장르의 예술영화다.

이은지 기자 ghdpssk@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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