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감독 “‘우리집’은 현재 진행형인 나의 이야기”

2019-08-20 18:16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은 복잡하고 미묘한 아이들의 세계를 섬세하게 담아내며 평단과 관객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관객은 물론, 여러 영화인이 인생 영화로 꼽을 정도. 장편 데뷔작의 놀라운 성공 이후, 윤가은 감독은 다시 한 번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왔다. 친구 관계에서 가족 관계로 확대된 윤가은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섬세하고 조금 더 성숙해졌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들이후 3년 만에 신작입니다. 전작의 결과가 윤가은 감독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장편 영화(‘우리들’)를 만들기 전에는 ‘어린이 얘기는 하지 마’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다 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죠. 근데 그냥 하고 싶었고,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으니까 한 거였습니다.(웃음) 개봉은 생각도 못 했고, 영화제에라도 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개봉을 해버린 거죠. 예상치 못한 반응이 있었고요. 이후에 그 의미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그래서 제가 해석을 했죠. ‘또 만들라는 얘기일 수도 있어!’

우리들에 이어 우리집에서도 아이들의 세계를 담았습니다.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 시작점이 궁금하네요.

오랫동안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런 형태로 나올 줄은 저도 몰랐어요. 원래 ‘우리들’ 막바지에 차기작으로 구상했던 내용은 ‘우리집’과 달랐거든요. 가족 얘기는 맞지만 아동학대라는 실질적 문제를 다루는 훨씬 센 영화였어요. 그 작품을 준비하다가 ‘미쓰백’(2018) ‘마더’(tvN, 2018) 같은 관련 작품이 제작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이야기를 고민하게 됐어요. 누구나 가질만한 평범한 문제인데 개인에게는 천지는 흔드는 일을 다루고 싶었고, 제 경험담과 모든 것을 합쳐보다가 나온 결과물이죠.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중요한 키워드는 가족이군요.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이 가족을 구성하고, 어떤 갈등과 문제를 겪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제 안에서도 가족 문제라는 게 현재 진행형처럼 정리가 안 되고 풀리지 않는 느낌이라, 이걸 언제 할 수 있을까 오래 고민했어요. 하지만 그냥 설익은 상태라도 이 순간에 느끼는 걸 조금이라도 얘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집은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과 달리 아이들에게 미션이 생긴 거죠. 이 미션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부모의 불화를 대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많은 작품에서 아이들은 불화의 피해자로, 상황을 지켜보거나 눈치 없는 모습으로 다루는데 실제로 우리는 어렸을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잖아요.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죠. 그 시절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또래 친구가 아니라 나이가 다른 언니, 동생이 서슴없이 어울리는 점이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정말 어렸을 때 볼 수 있는 광경이죠.

저는 지금보다 동네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훨씬 많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친구가 되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학교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동네에서 만나는 옆집 언니, 오빠, 동생들이 여럿 있었죠. 그때 나이가 다른 친구들과 쌓은 우정은 같은 나이 친구들과 쌓는 우정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남아있어요. 그렇게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가족처럼 느껴지는 친구 관계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자전적 경험과 함께 현시대 아이들의 세계도 함께 담아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가족에 대해서 열린 대화를 하지 않아요. 초등학생 때는 우리 가족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일 때 그게 부끄럽기도 하고 실제로 놀림감이 되기도 합니다. 좀 커서 청소년기가 되어야 얘기를 꺼내죠. 그래서 아이들과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건 어려운 상황이었고, 대신 인터넷을 많이 봤어요. 검색어만 입력하면 주르륵 나올 정도로 아이들이 인터넷에 고민을 많이 올리더라고요. 인터넷이 고민 상담의 창구가 된다는 게 놀랍다가도 동시에 얼마나 물어볼 곳이 없으면 여기에 물어보나 싶었어요. 포털이나 아이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를 찾아봤고, 부모 관계나 육아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어요.(웃음) 어린이 청소년 문학도 열심히 봤고요. 굉장히 많은 통로가 있었습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촬영 과정도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과 호흡을 맞춰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길게 갖는 편이에요. 말하자면 리허설을 두 달 정도 하는 거죠.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장면에 대해 설명해주면 아이들이 장면을 즉흥적으로 만들어요. 그리고 그 장면을 다듬고요. 촬영장은 숨 가쁘게 촬영을 이어가야 하는 곳이니까, 촬영 전에 이것저것 시도하는 시간을 오래가졌어요.

촬영에 돌입할 때는 처음 구상한 장면과 완전히 달라진 경우도 있었겠네요.

리허설 때 수정이 정말 많았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도 한 회차씩 쌓이면서 발견하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현장에서 옷을 입고 소품을 가지고 연기를 하면 리허설 때 보는 것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매일매일 뭔가를 발견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상상 이상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고, 현장에 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랄까요? 예상치 못했던 것을 볼 때가 더 많았어요.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여기에는 배우들의 역할도 굉장히 컸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에 이어 또 한 번 놀라운 배우들을 발굴해낸 과정이 궁금합니다.

2018년 2월부터 5월까지 전국의 어린이는 다 만난 것 같아요.(웃음) 연기를 하고 싶은 친구를 대상으로 프로필을 받고, 일대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좋아하는 아이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주 짧은 대화에도 잘 통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나중에는 그 친구들을 모아서 그룹 오디션을 봤는데, 오디션으로 즉흥극 놀이를 했습니다. 제가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은 연극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돼서 즉흥극을 하거나 게임을 했어요. 이 친구들이 같이 있을 때 어떤 반응을 하는지 궁금했거든요. 다행히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느낀 친구들이 하고 싶다고 해줘서 ‘우리집’을 함께 하게 됐죠.

연극배우가 되거나 선생님의 역할을 하면서 우리집의 현장을 이끌었습니다. 어린 배우들과 함께하는 현장의 감독으로서, 정말 다양한 책임을 짊어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꼭 어린이 배우와 함께하지 않아도 영화 촬영 현장에서 감독에게 정말 많은 역할이 주어져요. 어떤 때는 과감하게 선택을 내려야 하고, 어떤 때는 스태프들의 감정을 보듬어야 하죠. 여기서 제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배우들의 보호자 역할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어린이 배우와 저, 제작진은 같이 영화를 만드는 동료이기도 하지만, 제가 좋은 어른, 선생님으로서 잘 가르쳐줘야 하는 순간도 있어요. 그래서 작업을 할 때마다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부모님, 선생님들은 대체 어떻게 하시는 건지, 정말 극한 직업인 것 같아요.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집은 어린이 배우를 위한 촬영 수칙으로도 화제가 됐습니다. 어린 배우들의 체력적 여건과 함께 정서적인 면까지 배려하려는 노력이 느껴졌어요. 이 수칙은 어떻게 탄생한 건가요?

예를 들면 ‘예쁘다’ ‘귀엽다’는 칭찬을 하잖아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 말을 할 때는 외모적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는 거죠. 배우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친구들이다 보니 외적인 면에 관심이 많고 예민하기도 해요. 어느 날 예쁘다는 말을 안 했을 뿐인데 ‘오늘 내가 이상해서 아무도 예쁘다고 안 하는 건가?’라고 고민하는 친구가 있더라고요. 그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또 이런 말들이 싫은데 내색을 못하는 친구도 있고요. 칭찬이어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거죠. 이런 점을 잊지 말고 잘 지켜보자는 의미에서 촬영 수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다방면으로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도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현장에서 생긴 변수들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다 지나고 나서야 ‘아이고, 나 실수했구나’하고 느껴지더라고요.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어린 배우들과 촬영하다 보면 주의할 점이 정말 많아서 촬영이 끝날 때마다 ‘앞으로는 절대 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근데 잊어버리고 계속하게 되네요.(웃음)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족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작전은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시도들에 주목하죠.

영화 속 가족의 문제는 아이들의 내면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예요. 부모가 해결해야 할 문제고, 사실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죠. 하지만 아이들은 그 문제를 완전히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요. 아이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노력들이 덧없게 느껴질 때도 있고,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마음 자체가 어른들이 잃어버린 힘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마음이 아이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 노력했던 어른들이 스스로를 계속 칭찬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세 아이의 노력은 어떤 의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걸 직면하게 돼요. 하지만 이 노력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좋겠어요. 저도 어렸을 때 ‘이게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모든 게 실패로 남는 건 아니잖아요. 이 상태의 가족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가가는 거니까요. 어떤 것을 성취해야만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붙잡고 있던 것을 놓는 것도 굉장한 도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서는 그려지지 않지만, 이후에 아이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예요. 하나(김나연),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이는 가족 밖에서 서로를 찾았으니까요.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집이후의 윤가은 감독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어떤 작품을 하는,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요?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커요. 지치지 않고 싶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영화를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는 꾸준히 하고 싶고, 저도 영화 팬으로서 좋아하는 이야기가 많아서 다른 시도도 하고 싶어요. 일단은 제가 좀 더 커야할 것 같아서 공부도 열심히 할 거고요. 그냥 꾸준히 하고 싶네요. (웃음)

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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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지 기자 jinn8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