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웅의 특별한 리뷰 | <조커> 영웅과 악당의 경계 위에 선 어릿광대

2019-10-28 11:16

하얗게 분칠한 얼굴 위로 광대 분장을 디테일하게 잡아가는 아서 플렉(호아퀸 피닉스)처럼 토드 필립스 감독은 <조커>를 분장의 영화로 연출한다.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빌런 조커를 가져와 코미디언이 되고자 했지만, 공포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마틴 스콜세지의 <코미디의 왕>(1983)에서, 희극도, 비극도 아닌 삶에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혼돈의 페이소스를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1936)에서, 허구의 슈퍼히어로 장르를 취하면서 세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접근법은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2008)에서 가져와 조커와 같은 정체성의 연출을 구사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의 핵심은 ‘경계’다. <조커>에서 아서 플렉은 경계에 선 인물이다. 동료가 가지고 다니면 도움이 된다며 건네준 권총 때문에 클럽에서 해고되는 상황만 보면 안타까운 희생양 같으면서도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자 엄마를 살부(殺父)하는 순간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의 기운이 뚜렷하다. 부잣집 웨인 가(家)의 핏줄인 줄 알았던 아서 플렉의 출생의 비밀에 맞춰 가진 자를 향한 못 가진 자들의 반란이 고담 시에 들불처럼 불어닥치자 조커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처럼 숭배받는다. 영웅과 악당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이 장면은 <조커>의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힌트다.

주목하고 싶은 건 그 배경이다. 시대를 적시하지 않지만, 제작사 워너 브러더스의 클래식 로고를 오프닝에 노출한 의도에서 <조커>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사이를 배경으로 삼은 듯하다. 당시 미국은, 더 정확히 FBI 내의 행동과학부는 전역에 산재한 연쇄살인마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의 역사적 배경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마인드 헌터>(2017~ )로 익숙하다. <조커>에는 <마인드 헌터>와 공유하는 지점이 꽤 많다. 빠져나갈 틈 없이 스크린을 꽉 채운 오프닝 타이틀 하며 아서 플렉이 아캄 주립 정신병원에 갇혀 의사인지, 행동과학부 요원인지 모를 인물 앞에서 마이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 등이 그렇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세부적인 요소는 그렇다 치고 <조커>와 <마인드 헌터>는 ‘경계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해를 바탕에 둔 인간관을 공유한다. <마인드 헌터>의 빌 텐치(홀트 맥칼라니) 요원은 “미친놈들 생각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들을 예측합니까?” 프로파일링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 에드먼드 캠퍼를 여러 번 만나 인터뷰하면서 홀든 포드(조너선그로프)가 도달하는 종착점은 ‘혼란’이다. (그래서 홀든 포드는 공황장애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된다.) 악은 그 자체로 사악한 줄 알았는데 첫 만남에서 차분한 모습에 놀라고 그 후에 자살 시도 소식에 경악하고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그의 생각과 행동에 홀든 포드 자신마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이 <조커>에서 의도하는 바도 그런 종류의 혼란이다. 슈퍼히어로물을 엔터테인먼트로 접근한 영화에서 조커는 배트맨의 반대편에 선 악당이지만, <조커>는 선악을 단순하게 이분화하는 장르 세계 속 인물로 규정하지 않는다. <마인드 헌터>에서 에드 켐퍼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홀든 포드가 빌 텐치와 나누는 대화를 빌려와서 설명하면, “광기에 찬 스릴 킬러가 아니에요. 그냥 충동적으로 죽인 게 아니에요. 조건이 형성된 거예요.” 사람을 웃기려고 했던 그의 진심을 몰라줬던 세상을 향한 분노와 같은 환경적인 조건이 아서 플렉을 조커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정말?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밝혔듯 <조커>는 아서 플렉의 예측할 수 없는, 그러니까 규정할 수 없음을 목적으로 삼은 영화다. 어느 부분까지 민낯이고, 화장한 얼굴인지, 조커의 상황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거짓인지 판단 불가다. 실제로 아서 플렉이 이웃집 소피(재지 비츠)와 애인 관계로 마음의 위안을 얻은 사연이 상상의 산물이란 게 중간에 밝혀지기도 한다. 그처럼 <조커>는 마지막 장면을 근거 삼는다면 정신병원에 갇힌 아서가 들려주는 얘기에 의존한 꾸민 사연일 수도 있다. 인간이란 그렇게 복잡하고 입체적인 존재다. 그래서 규정하고 설명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에 대해 환경이 만든 괴물, 폭력 미화 운운하는 건 인물을 단순화하는 슈퍼히어로 장르에 익숙한 발상이 아닌가 말이다. 난 오히려 조커를 어느 쪽으로도 규정하지 않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연출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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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남웅 기자 edwo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