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후쿠오카’, 평행우주로 이어지는 첫사랑의 기억

2019-11-30 09:00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장률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 꾸준히 보여준 본인만의 신선한 연출로 ‘후쿠오카’ 속 두 남자가 가진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기묘하게 풀어낸다. 동시에 사랑엔 반드시 어떤 형태가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해효와 제문

사진 파랄렉스필름

영화는 헌책방 주인 제문이 기묘한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효를 떠오르게 만드는 목소리에 제문은 이끌리듯 후쿠오카 행을 결정하고 그곳에서 해효를 만난다.

해효와 제문은 지독히도 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취향이 같다. 인테리어도, 즐겨하던 놀이도, 아닌 척 하지만 첫사랑 순이의 기억을 떠나 보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까지 비슷한 그들을 영화는 마치 평행우주처럼 연결 짓는다. 28년의 시간 동안 전혀 다른 공간에서 비슷한 삶을 살아온 두 남자가 신비한 도시 후쿠오카를 누비며 지난 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 작품 속에서 코믹과 카리스마를 넘나들며 관록이 담긴 연기를 보여준 배우 권해효와 윤제문이 각각 해효와 제문을 연기했다. 해효와 제문은 28년 전엔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첫사랑 순이와의 일로 연락을 끊은 인물들이다. 서로 그럴듯한 이유로 계속해서 충돌하는 두 사람은 때론 둘도 없는 친구처럼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두 인물은 영화가 가진 신비한 분위기 속에 침묵을 깨며 환상의 티키타카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의 주은과 '후쿠오카'의 소담

사진 트리플픽쳐스

장률 감독의 전작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에서 기묘하고도 슬픈 기억을 가진 소녀 주은 역을 맡았던 배우 박소담이 ‘후쿠오카’에선 소담을 연기하며 특유의 신비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장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 주은이 껴안고 노래 부르던 일본인형을 이번 작품으로 다시 등장시키며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와 ‘후쿠오카’가 같은 세계관에 있다는 암시를 준다. 동시에 서로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주은과 소담의 평행우주를 완성한다. 주은은 5살 때 사고로 엄마를 잃었고 소담은 5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가 죽었다 생각하며 살고 있는 인물이다. 각각의 작품 속 두 인물은 내색하지 않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 엄마를 그린다. 엄마에 관한 노래를 부르고 잠꼬대로 엄마를 찾는 등의 모습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한 부재와 그것이 미치는 잠재적 불안을 떠올리게 한다.

‘후쿠오카’의 소담은 평범한 캐릭터처럼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기묘한 인물로 변모한다. 신비하고도 기이한 행동들을 보이며 영화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더한다. 그는 후쿠오카를 누비며 만난 이들과의 서정적인 대화를 통해 기존에 가진 사랑 틀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송신탑

사진 파랄렉스필름

해효와 제문, 소담 세 인물이 후쿠오카 거리를 거니는 내내 그들의 어깨너머로 거대한 송신탑이 보인다. 마치 송신탑이 인물들을 계속해서 따라오는 것만 같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시점부터 인물들의 사이에 걸쳐 있는 송신탑의 모습은 평행우주의 시작점이라는 느낌을 준다.

‘후쿠오카’의 송신탑은 장 감독의 2014년 작품 ‘경주’에서 보여준 거대한 릉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장 감독은 경주를 죽음과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도시로 연결 지으며 릉을 죽음 그 자체로 표현했다. “경주에선 릉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기 힘들다”는 민아의 대사를 통해 죽음은 언제나 그 모습을 드리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후쿠오카’ 속 송신탑은 다른 세상으로의 연결을 가능하게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은은한 존재감으로 작품의 신비함을 더하며 동시에 장 감독의 세계관을 연결 짓는 고리가 된다. 세 인물의 기묘한 여정이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 것이라 기대한다.

영화정보

개봉 : 2019(미정)/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출연 :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야마모토 유키/ 감독 : 장률/ 제작 : 률필름/ 배급 : 파랄렉스필름/ 러닝타임 : 85분/ 별점 : ★★★☆

박재은 인턴기자 jeunny@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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