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① | 한중일 시네마 흥망성쇠, 할리우드 위협하는 중국 영화 시장의 맹점

2020-01-18 09:00

[맥스무비=정찬혁 기자] 1919년 ‘의리적 구토’가 최초로 상영된 이후 한국 영화는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궁히 발전했다. 고전 문학을 옮긴 작품부터 항일 의지를 담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 우리 영화는 일제 정책에 의해 침체기를 겪고 한국전쟁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후 김기영 감독 ‘하녀’(1960), 유현목 감독 ‘오발탄’(1961) 등 지금도 회자되는 작품들이 탄생하며 부활한 국내 영화는 유신 정권 검열 하에서도 다양한 수작을 꽃피웠다.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1990년대부터 산업적으로 크게 성장한 국내 영화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작품이 줄지어 나오고, 장르적 특색을 지닌 작품들이 해외 영화제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전세계 10대 영화 시장에 들어선 한국 영화는 2013년부터 연간 전체 영화 관객이 2억 명을 넘었다. 한국 영화 100년을 맞이한 2019년 천만 영화가 다섯 편 탄생했고,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후 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며 최초 기록을 써내려 간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은 지난 5일(현지시간) 제77회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다음달 열리는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6개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처럼 양적 질적 성장을 일궜지만 현재 국내 영화는 양극화라는 문제점을 짊어지고 있다. 대박 영화는 많았지만 중박 영화가 부족해 쏠림 현상이 여전했다. 저예산, 독립 영화 현장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영화 시장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웃나라 중국, 일본도 흥망성쇠를 반복했다. 문화를 공유하며 비슷한 듯 상반된 길을 걸어온 이웃나라를 통해 국내 영화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영화 ‘영웅본색’ 스틸. 사진 (유)조이앤시네마

#1980-1990년대 이끌던 홍콩, 쇠퇴의 길로

아시아 영화 중 1980년대와 1990년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오고 인기를 끌었던 건 홍콩 영화다. 홍콩 영화는 1930년대 상하이 영화사들이 홍콩에 영화 제작 시설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토대가 형성됐다. 1960년대 홍콩 영화는 영화 제작·배급사 쇼 브라더스를 필두로 한 무협 장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는 불세출 액션 스타 이소룡이 등장해 미국 문화에도 침투했다. 이소룡은 쇼 브라더스에서 분리된 골든 하베스트와 함께 ‘당산대형’(1971), ‘정무문’(1972), ‘용쟁호투’(1973), ‘사망유희’(1978) 등을 제작했다.

1980년대 홍콩 영화는 새로운 액션 스타 성룡을 발견하며 성공을 이어갔다. ‘취권’ 시리즈, ‘폴리스스토리’ 시리즈 등에서 성룡은 이소룡과 달리 코믹하고 절묘한 액션으로 홍콩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1980년대 중후반은 성룡표 액션물과 함께 ‘영웅본색’(1986)으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가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아시아 영화계를 이끈 홍콩 영화는 1997년 반환 이후 개성을 잃고 침체에 빠졌다. 주요 배우, 감독들이 할리우드로 진출한 것도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대만 영화는 1949년 중국 혁명 후 대만으로 건너온 영화인들에 의해 기틀이 다져졌다. 중국 본토 영화인을 기반으로 시작한 대만 영화는 1960년대부터 홍콩과 교류하며 산업적인 성장을 이뤘다. 1980년대 대만 영화는 사실적인 묘사와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들로 홍콩과 다른 독자적인 양상을 보였다. 진지한 내용을 주로 다루는 대만 영화는 1980년대 이후 상업적으로 외면 받으며 위기를 겪었다. 재능 있는 대만 출신 감독들은 본토나 할리우드로 진출하며 대만 영화는 더욱 더 침체를 겪었다. 대만에서 ‘쿵푸 선생’(1992) 등을 연출한 이안 감독은 중국 본토에서 홍콩, 대만 스태프와 함께 ‘와호장룡’(2000)을 촬영했으며, 이후 ‘브로크백 마운틴’(2006), ‘라이프 오브 파이’(2013), ‘제미니 맨’(2019) 등 주로 할리우드 작품들을 연출해 왔다.

영화 ‘특수부대: 전랑2’ 스틸. 사진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할리우드 위협하는 중국, 산업과 체제의 충돌

본토 중국 영화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홍콩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1920년대부터 산업 형태를 갖춘 중국 영화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체계를 잡아갔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중국 영화는 예술이나 산업이 아닌 이데올로기 도구로 활용됐다. 같은 시기 홍콩은 무협, 코미디 영화 등을 제작하며 산업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물결을 탔다. 국가에서 투자, 제작, 배급, 상영을 모두 관리했던 중국은 1994년 미국 영화 수입을 재개하고 1995년 성급 제작소의 영화 제작권을 인정했다.

2001년 WTO 가입 시 중국은 수입 영화 할당을 늘리고 외국 자본의 비디오테이프 등 판매업 경영 참여도 허가했다. 2002년부터는 민영 영화사가 독자적으로 영화를 제작, 개봉할 수 있게 허가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매년 급성장한 중국 영화 산업은 2011년에는 세계 3위 규모에 도달했으며 현재 북미에 이어 2위다.

홍콩, 대만 영화 시장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중국 영화 산업은 대규모 자본과 인구를 무기로 할리우드를 위협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 수익이 600억 위안을 돌파했다. 자국 영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해온 중국은 몇 년 전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 최고 흥행작인 ‘특수부대 전랑2’(2017)는 전 세계 흥행 수익 8억 7000만 달러(이하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로 2017년 전세계 흥행 순위 7위에 들었다. 2019년 중국을 휩쓴 ‘너자’는 전 세계 흥행 수익 7억 달러, ‘유랑지구’도 6억 9976만 달러를 기록했다.

폭발적인 성장과 성과에도 그늘은 있다. 폐쇄적인 사회주의 체제와 상업 영화의 충돌은 중국 영화가 극복할 관문이다. 중국은 통상 한해 34편의 외국영화만 개봉을 허용하며 자국 영화를 보호했다. 2019년 중국 박스오피스 TOP10에 외국 영화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분노의 질주: 홉스&쇼’가 전부다. ‘특수부대 전랑2’, ‘너자’, ‘유랑지구’ 등 기록적 흥행작이 거둬들인 수익 대부분은 자국에서 발생했다. 해당 작품들의 북미 수익은 전체 1%도 안 된다. 국가가 해외 작품을 막고 국가에서 자국 영화를 밀어준 자국 내 결과물이며, 해외 시장에선 아직 통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기술적으로는 크게 도약했지만 당국 검열이 강화되고 사회주의 윤리의식을 내포한 작품들이 만들어지면서 해외에선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영화 ‘백두산’ 스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양적-질적 성장으로 위상 높인 한국 영화, 아직 남은 숙제는.

국내 영화 시장도 중국 영화 시장의 맹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난해 국내 영화 중 ‘극한직업’, ‘기생충’ 두 편이 관객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대박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지만 2019년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약 20편 정도다. 사회주의 메시지를 담은 자국 영화 위주로 상영관을 채우는 중국 시장처럼, 우리나라도 잘 먹히는 흥행코드를 입힌 작품들만 스크린을 차지한다면 내실 있는 작품들이 외면 받게 된다. 중간 규모 작품이 계속해서 구석으로 밀리다 보면 어느덧 국내 영화는 새로운 배우, 감독, 시나리오라는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최근 배우 하정우는 본지 인터뷰에서 “작은 규모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목 받는 감독은 곧바로 큰 영화로 데뷔한다. 윤종빈 감독처럼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과정 없이 요즘은 바로 거대 자본이 투입돼 감독들도 개성을 펼칠 기회가 없다. 그래서 직접 제작사를 만든 것도 있다”고 말했다.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충분히 성장할 중간 단계가 부족하다는 것에 많은 종사자들이 공감했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홍콩영화 시장은 거의 전멸했다고 봐야 할 정도다. 중국은 중화주의를 내세우지 않으면 되는데 고질적인 문제다”고 중국 영화 시장 현주소를 짚었다. 국내 시장에 관해서는 “가장 시급한 건 스크린 독과점을 막는 것이다. 2차 시장이 좁고 해외 시장 개척 가능성도 높지 않은 상황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현실은 이해하지만 정도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정찬혁 기자 hyuck2777@maxmovie.com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maxpress@maxmovie.com

<저작권자(c) 맥스무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 찬혁 기자 hyuck2777@maxmovi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