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② | 한중일 시네마 흥망성쇠, 빛나던 일본 영화산업은 어떻게 몰락했나

2020-01-18 09:00

[맥스무비=위성주 인턴기자] 일본은 전 세계 영화 시장 3위, 2018년 기준 23억 달러 규모로 4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영화 시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일본 영화 시장은 하락세를 걷고 있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일본 영화는 만화 원작을 실사화한 작품이 대부분이며, 흥행 역시 애니메이션과 실사화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는 이유다. 실제로 2019년 한해 동안 일본 최고 흥행작은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다.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 포스터. 사진 (주)미디어캐슬

‘날씨의 아이’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2017)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7월 개봉한 이 작품은, 총 1억 2500만 달러(이하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흥행수익을 얻었다. 이 외에도 ‘날씨의 아이’에 이은 2019년 일본 영화 흥행 TOP10은 ‘알라딘’, ‘토이 스토리4’, ‘명탐정 코난: 감청의 권’, ‘겨울왕국2’, ‘어벤져스: 엔드게임’, ‘킹덤’, ‘원피스: 스탬피드’, ‘조커’ 순으로 상위권 작품 중 오리지널 각본을 가진 자국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 찬란했던 과거, 이제는 사라진 오리지널 각본

일본 영화 시장이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영화가 주를 이루는 무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시도하는 오리지널 각본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장이다. 특히 1950년대 등장한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아직까지 전 세계 영화인에게 존경을 받는 거장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영화 ‘라쇼몽’으로 1951년 제 1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외에도 1950~1960년대 일본에서는 걸출한 감독들이 등장하며 영화계 황금기를 이룩했다. 구로사와와 함께 일본 거장 감독으로 손꼽히는 미조구치 겐지는 ‘우게쓰이야기’(1953)를 통해 1953년 제 1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는 주제와 기술 상 혁신을 추구하는 누벨바그 영화 사조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미조구치 감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 장 뤽 고다르가 가장 존경했던 감독이라고 전해진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작품 '란' 포스터. 사진 그림상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 영화계는 오리지널 각본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 형국이다. 영화 ‘어느 가족’(2018)으로 제 71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높은 인지도를 얻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 매체(Newspicks)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영화 산업이 침체기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아쉽지만 지금 일본 영화 환경은 낙관적이지 않다. 대부분 영화 흥행은 구태의연한 시스템에 의존하고, 독립영화를 지탱해온 배급사들이 줄었다. 관객 취향에 맞춰 작품 흥행 규모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며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토오쿠(東宝), 쇼치쿠(松竹), 토에이(東映) 3대 배급사들은 일본 영화를 해외에 판매하려는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여저히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오리지널 작품에는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일본 영화 산업 몰락의 주요인, ‘제작위원회’

그렇다면 일본 영화계가 오리지널 각본을 가진 작품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9년 7월 발간된 아시아영화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요인 가운데 '제작위원회'가 일본 영화산업을 침체기로 들어서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영화는 제작위원회가 형성되어 그 안에서 기획 및 제작이 이뤄진다. 작품 하나가 제작될 때마다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모인 각 회사들이 단기적으로 조합을 만들어 영화에 공동으로 투자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때 제작위원회를 형성하는 주체는 주로 영화사, 방송국, 출판사, 광고회사 등 콘텐츠 관련 업계 회사들이다. 그들은 임의로 조합 계약을 체결하고 ‘제작위원회’를 조직한다. 각 회사가 투자하는 자금으로 제작 및 관련 경비를 조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쉽고, 안정적으로 거액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으며, 리스크가 분산돼 흥행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화 '은혼2: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스틸. 사진 (주)미디어캐슬

그럼에도 제작위원회 방식이 고질병으로 불리는 것은 각 조합회사들이 흥행 가능성이 있는 안전한 영화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상황인 이유다. 즉 제작위원회에 모인 각 회사들은 안정적인 수익 배분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일정 수준 흥행이 담보되는 유명한 소설과 만화만이 영화로 제작되는 것이다. 제작위원회가 폐쇄적인 형태인 것 역시 일본 영화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제작위원회는 조합회사로 참여하는 회사들이 업계 내 몇몇 회사로 한정적이다. 이와 같은 폐쇄적인 시스템은 참신하고 색다른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없게 만들며, 신진 영화감독에 대한 발굴 및 육성에 방해가 된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으로 참여한 모든 회사가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공유하게 되는데, 이는 저작물에 대한 최종 책임자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저작권자가 불명확함은 창작물에 대한 2차 저작물 제작을 어렵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이뤄지는 영화제작은 일본 영화업계가 점차 갈라파고스화 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제작위원회 방식은 흥행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는 것에는 특화된 방법이지만, 영화 산업 전체를 발전시키는 방향에서는 오히려 장애 요소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일본 영화산업은 과거 영광이 무색할 정도로 심한 부침을 겪고 있다. 언급된 바와 같이 주요 영화사를 통해 제작되는 영화는 주로 소설과 만화를 각색한 작품이며, 자체적인 오리지널 각본을 가진 영화는 현저히 줄었다. 1인당 영화 관람 횟수 역시 정체된 상태다. 2017년 기준으로 일본 국민들은 1.4회(이하 글로벌 산업정보 조사기관 IHS 기준) 영화 관람 횟수를 기록했다. 미국이 3.4회, 프랑스 3.2회, 한국 4.3회인 것에 비해 확연하게 낮은 수치다.

# 명암(明暗)이 분명한 국내 영화시장, 극복해야 할 당면 과제들

그렇다면 국내 영화 시장은 어떨까.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나, 작품의 다양성, 국제적 인지도 등에서 일본보다 나은 상황이지만, 국내 영화 산업 전망 역시 밝지만은 않다. 이미 1인당 영화 관람횟수가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한 국내 영화시장인 만큼, 관람객을 늘리며 영화 시장을 견인하는 방식은 한계에 달했다. 지난 2019년 한해 국내 누적 관객 수는 약 2억 2천만명으로(201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2억 2667만 9856명, 이하 영진위 영화관 입장원 통합전산망 기준)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영화 '백두산'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 덱스터스튜디오

영화시장이 성장 임계치를 맞이한 가운데, 특정 배급사가 수급하는 영화가 스크린을 독과점하는 문제는 국내 영화시장이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다. 2019년 천만영화가 5편이 등장했지만, ‘중박’ 작품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강성률 영화 평론가는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스크린 독과점을 막는 것이다.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2차 시장이 좁고, 해외 시장 개척 가능성도 높지 않은 상황에서 극장 수익을 내야 하는 현실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크린 독과점은 국내 소규모 독립·예술 영화부침으로 이어진다. 소규모 영화들이 특정 영화에 행해지는 스크린 독과점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이유다. 소규모 영화들은 대형 영화에 스크린 수 확보부터 밀리며 관객에게 다가갈 기회를 제한 받는다. 실제로 2019년 12월 19일 개봉한 영화 ‘백두산’ 상영 점유율이 47.4%에 달했던 반면, 같은 날 개봉한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상영 점유율 0.6%가 최고 기록이다.

이로 인해 국내 영화 시장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성장 한계에 도달한 시장을 특정 ‘대작’들이 대부분 점유했고, 소규모 영화들은 이름 알리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이는 결국 소규모 독립·예술 영화가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흔들게 되며, 끝내는 일본 영화 산업이 현재 처한 상황과 같이 색다른 시도나 신진 감독 발굴 및 육성을 가로막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국내 영화 시장이 가진 문제가 스크린 독과점만은 아니다.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공고하게 형성한 시장질서 역시 국내 영화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다. 2007년 불황 이후 국내 영화 시장은 점차 대형 투자·배급사를 중심으로 재편됐고, 이는 제작사와 감독에 비해 투자·배급사에게 힘의 무게추가 기울어진 현 상황을 만들었다. 그 결과 시나리오 개발은 자본 논리에 의해 개량화 됐으며, 감독들은 연출권 행사가 제한됐다. 이후 국내 영화 시장은 특색 있는 작품보다 시장에서 ‘잘 먹힐’, 비슷한 영화들이 양산되는 현재에 이르렀다.

예컨대 일본 영화시장과 국내 영화시장 모두 시장논리에 의해 이른바 ‘돈’이 되는 작품들을 추구하고 있다. 두 시장이 다른 점은 일본은 그 결과가 갈라파고스화로 나타난 반면, 국내 영화시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일본 영화시장과 같이 빛을 잃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위성주 인턴기자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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