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기도하는 남자’ 신이 준 시련은 견딜만한 것인가

2020-02-15 09:00

[맥스무비=정지은 기자]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은 고난을 겪는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은 이때까지 지녀온 신념을 부정하게 만들고 주어진 현실에 굴복하게 만든다. 일부 사람들은 이 과정이 모두 신의 뜻이라고 말한다. 신은 오직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며, 모든 과정은 신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계산한 의도라고 여긴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위로가 통하지 않는 상황도 존재한다. 벗어날 수 없는 불행에 잠식당하는 인간들에게 신의 존재란 기만일 뿐이다.

영화 '기도하는 남자' 스틸. 사진 랠리버튼

‘기도하는 남자’는 지독한 경제난 속에서 개척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 태욱(박혁권)이 아내 정인(류현경)과 함께 장모 영애(남기애)의 수술비를 마련하며 비윤리적인 유혹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신념 하나로 인생을 버텨온 종교인이 방황하는 과정을 통해 이상을 굴복시키는 현실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태욱과 정인은 눈앞에 닥친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들에게 편의점은 생존을 위한 장소다. 목사와 대리운전사 일을 병행하는 태욱은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정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모자란 생활비를 채운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두 인물은 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태욱은 밀려오는 졸음을 이겨내는 순간에도 “아멘”을 외치고 정인은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알게 된 순간에도 십자가를 찾아가 위안을 받는다. 그들은 신의 시험대에서 난도질 당하는 순간에도 신을 마지막 구원이자 희망으로 여긴다.

영화 '기도하는 남자' 스틸. 사진 랠리버튼

‘기도하는 남자’는 강동헌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이전 단편 영화 ‘애프터 세이빙’, ’굿나잇’으로 탁월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경건한 교회, 허허벌판인 황무지를 비롯해 그가 섭외한 다양한 촬영 장소들은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표현한다. 등장인물이 가진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설정들도 돋보인다. 정인이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수호(오동민)를 만나러 가는 장면과 영애(남기애)가 성경 없이 집을 나서는 장면은 인물들이 지닌 섬세한 감정들을 보여준다.

강동헌 감독은 작품 속에 다양한 악인들을 심었다. 욕망에 굴복한 악인, 욕망을 이기려는 악인, 욕망을 이용하는 악인은 현실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다. 태욱과 정인 역을 맡은 류현경과 박혁권이 펼치는 연기는 밑바닥에 몰린 두 인물이 지닌 잔혹함을 드러낸다. 박혁권은 선한 목사가 폭력도 불사하는 인물로 변신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류현경은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눈빛만으로 내적 갈등을 표현했다. 이외에도 장모인 영애 역을 맡은 남기애, 정인의 친구인 연정 역을 맡은 권소현, 태욱의 후배 동현 역을 연기한 김준원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영화 '기도하는 남자' 스틸. 사진 랠리버튼

‘기도하는 남자’는 특정 종교를 비난하는 작품이 아니다. 종교를 소재로 삼았지만 모든 현대인들이 한번쯤은 겪어봤을만한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으로 인해 고뇌하는 등장인물들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끝없는 벽을 마주하는 인물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죄책감을 벗어 던지고 악행의 주체가 된다. 누구보다도 선했던 인물이 타락하는 과정은 비참한 현실을 상기시키며 더욱 잔혹하게 다가온다.

‘기도하는 남자’는 가치를 잃은 신념들이 표류하는 작품이다. 태욱과 정인이 지은 교회 벽에 걸린 십자가는 단지 벼랑 끝에 걸린 나약한 나뭇가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손을 뻗어 잡는다고 해도 벼랑에서 추락하는 자신을 지탱할 리 없는 가냘픈 힘일 뿐이다. 운명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결말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신이 준 시련은 과연 견딜만한 것인가?”

개봉: 2월 20일/관람등급: 15세 관람가/출연: 박혁권, 류현경, 남기애/감독: 강동헌/배급: ㈜랠리버튼/러닝타임: 95분/별점: ★★★

정지은 기자 jea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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