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n번째 이별중’ 청량하고 깊은 맛, 시간여행 청춘 로맨스

2020-04-01 10:22

[맥스무비=이유나 기자] 누구에게나 시간을 되돌리길 바라는 순간이 찾아온다. 시간여행만 할 수 있다면 언제로든지 돌아가 흑역사를 예방하고,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겠다는 헛된 희망을 꿈꾸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한 시간여행 소재 영화는 일상 속 달콤한 상상을 부추기며 큰 사랑을 받아왔다. 시간여행은 얼토당토 않은 판타지에 불과하나, 매일 과거의 기억을 들추며 후회와 창피함을 오가는 관객들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안겼다.

영화 'n번째 이별중' 스틸. 사진 퍼스트런, 팬엔터테인먼트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아온 로맨틱 코미디 작품 ‘n번째 이별중’ 역시 시간여행 소재의 매력을 꽉꽉 눌러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에 시간여행 소재를 녹임으로써 사랑에 관한 통찰을 시도한다. 극 중후반쯤을 지나갈 때쯤 관객은 주인공 스틸먼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뭐하러 돌아가려고 해? 현실에서 노력할 수는 없는 거야?”

주인공 스틸먼(에이사 버터필드)과 데비(소피 터너)는 서로 모든 게 정반대인 커플이다. 사교적이고 활발한 데비와 다르게 스틸먼은 연애에 서투른 쑥맥이지만 서로의 다른 점에 끌려 연인이 됐다. 영화는 어느날 데비가 스틸먼에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하고, 스틸먼이 자신이 직접 개발한 타임머신 어플을 이용해 이별의 순간을 되돌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스틸먼이 여러 번 시간을 돌려 다양한 방식으로 데비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오프닝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짠하기 그지없다. 옷도 멋있게 입어보고, 이별을 쿨하게 받아들여보는 척 해보기도 하고, 절절히 매달려도 보지만 데비의 마음은 굳건하기만 하다.

연애는 못해도 지능만큼은 뛰어난 스틸먼은 엄청난 기억력으로 데비와의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그 모든 순간을 정리해본다. 칠판 한 가득 쓰여진 찌질의 역사를 잠자코 바라보던 그는 타임머신 어플을 이용해 데비와의 관계를 변화시키기로 결심한다. 절친 에반(스카일러 거손도)과 함께 과거로 돌아간 스틸먼은 데비 앞에서 흑역사를 쌓은 그 모든 순간들을 마주한 채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결정들을 하게 된다.

영화 'n번째 이별중' 스틸. 사진 퍼스트런, 팬엔터테인먼트

이후 스틸먼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정정하고, 어떻게든 데비의 기분에 맞추려 노력하며 관계를 이어나갔으나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 행한 모든 결정들이 데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다.

과거의 모든 결정까지 끌어안고 오늘의 나를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스틸먼이 후회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간여행이라는 극단적인 시도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에 연연하는 후회보다는 현실에서의 노력과 극복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뿐만 아니라 초반 제 감정에 한없이 솔직했던 스틸먼 본연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매사에 감정을 억누르고 상대에 맞추는 연애는 연인의 텅 빈 눈동자만을 남겼을 뿐이다.

어쩌면 시간여행 소재 영화들 속 타임머신은 주인공들이 과거가 아닌 내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 ‘어바웃 타임’ 속 돔놀 글리슨은 자신의 능력을 더 이상 발휘하지 않은 채 보통의 삶을 살아갔고,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오웬 윌슨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벗어나 오늘날로 돌아왔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 영화 속 주인공들이 시간여행을 통해 얻는 건 진실된 삶의 가능성을 느끼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인 듯하다.

영화 'n번째 이별중' 스틸. 사진 퍼스트런, 팬엔터테인먼트

소재가 소재인만큼 개연성을 크게 기대할 수는 없다. 공대생이 여자친구와의 이별 위기에 몰려 타임머신을 남몰래 만드는 것도, 타임머신의 존재를 알게 돼도 전혀 놀라지 않는 여자친구의 반응도 관객들의 공감을 다소 방해한다. 그럼에도 ‘n번째 이별중’은 확고하고 깊은 주제 의식, 청춘 로맨스다운 청량감으로 영화의 맛을 높인다.

무엇보다도 에이사 버터필드와 소피 터너의 예상치 못한 케미스트리가 눈을 즐겁게 한다.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로 한차례 너드 캐릭터를 소화했던 에이사 버터필드가 쑥맥 로맨티스트 스틸먼을 경력자다운 능숙함으로 연기해냈다.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의 산사 스타크로 얼굴을 알린 소피 터너는 또래다운 ‘핫걸’ 데비 캐릭터를 소화하며 에이사 버터필드와 순조롭게 커플합을 맞췄다. 넷플릭스 시리즈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에서 활약을 펼쳤던 스카일러 거손도는 스틸먼의 절친 에반 역으로 나서 웃음을 피워내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개봉: 4월 1일/관람등급: 12세 관람가/출연: 에이사 버터필드, 소피 터너 외/감독: 앤드류 볼러/수입: ㈜퍼스트런/배급: ㈜팬 엔터테인먼트, ㈜영화특별시 SMC/러닝타임: 104분/별점: ★★★

이유나 기자 ly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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